[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북천-우는 손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북천-우는 손
  • 하동뉴스
  • 승인 2020.08.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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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북천-우는 손

                                 유홍준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를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시집『북천-까마귀』(문학사상, 2013)

【시인 소개】
유홍준 /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으로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이 있음.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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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설화적이기도 하고, 우화적이기도 해서 짧지만 그 여운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냥 범박하게 이해하자면, 오동나무 아래서 매미를 둥글게 말아 쥐고 가는 한 아이를 만났을 뿐입니다. 시골에서 여름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지요. 하지만 시인의 눈을 거치면 그 평범한 사건에 신비로움이 입혀집니다.
봉황이 깃든다는 ‘오동나무’의 상징성도 심상치 않지만, 그 아래서 만난 아이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시인은 ‘매미 울음’소리에서 ‘매미’는 무시하고 ‘울음’에만 집중합니다. 아이가 재미로 잡은 ‘매미’를 쥐고 가는 게 아니라 불길한 운명의 징조인 ‘울음’을 쥐고 가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지요. 그러니 평생 울음을 쥐고 살아야 하는 불길한 운명에서 벗어나려면 매미를 놓아주라고 하는 거지요. 질곡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은 매미의 울음마저도 피하고 싶은 것이지요.
여름철 낭만 중에서 뺄 수 없는 게 빗소리이고, 여름철 구경거리 중에서 으뜸이 넘실거리는 물구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올 여름의 빗소리나 섬진강은 낭만이나 구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공포스러웠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이제야 터지기 시작한 매미 울음소리조차도 시원하게 즐길 수가 없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만 봐도 놀라지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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