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일 칼럼] 편견
[박영일 칼럼] 편견
  • 하동뉴스
  • 승인 2022.09.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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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의회 7·8대의원
(교육사회위원장) 박영일


 안식년을 이용해 영동 고속도로 한 휴게소에 아르바이트를 체험한 신부님의 이야기이다.
27년 동안 사제복 덕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살았다는 사실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사람들이 사는 게 점점 힘들어 보이고, 자신이 삶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자 어렵게 휴게소 미화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에 농공단지 일자리를 찾았지만 나이가 많아 취업하지 못했고, 지인의 소개 덕분에 어렵게 휴게소 미화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들이 우스게 소리가 아니란 걸 피부로 느꼈다. 출근 첫날부터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지만 소개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그것도 뜻대로 할 수 없었다. 화장실 구역을 배정받아 허리 펴볼 틈도 없었고, 이용객이 함부로 사용하는 까닭에 한숨은 절로 나왔다. 그래도 고달픈 건 견딜 만 했었지만 미화원이라는 직업의 편견을 참는 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일시적 일자리가 아닌 평생 직장인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 편한 날은 없었으며, 생활 전부를 자기 위주로 사는 세상들이라 하지만 남을 멸시하는 상당수 사람의 언행에 마음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커피자판기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하고 있었다. 사용법을 잘 몰랐는지 커피가 걸쭉하게 나와 마실 수 없는 상태였기에 신부님은 휴게소 직원이라는 사명감에 자신의 돈으로 제대로 된 커피를 뽑아 주었다. 그 여성이 “아저씨 고마워요 저건 아저씨가 드시면 되겠네”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신부님은 신학교 출신이라 돈 벌어 본적도 없고 세상 물정도 잘 몰랐지만 편견 심한 세상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을 공부시키고 집장만하고 생활하며 교부금을 내는지 그 고충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소위 빽을 경험했고, 세상의 편견은 우리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요즈음 웬만한 식당에만 가도 외모로 평가하며 출입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가 다른 곳이 허다하다. 언행과 자리 위치까지 다르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과  남루한 옷차림으로는 제대로 손님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공공기관 기업 등에도 상당히 개선이 되었지만 아직 보이는 것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고가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에도 편견 없이 친절한 근무자가 있는가 하며, 외모만보고 고객을 대하는 근무자가 있음에 우리 국민성에도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건설업 하는 지인이 분에 넘치는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인즉 평범한 차량으로 관련 업체에 방문하면 경비실부터 차별을 받고 면담하기가 불가능 할 때가 빈번하다는 답변에 세상이 너무 바르지 못한 길로 가고 있음에 왠지 서글퍼진다. 오래전 어느 해 겨울날 선배님의 사무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잠바 차림의 중년이 선배님을 찾았다. 때마침 부재중이시고 나이가 가장 어린 탓에 혼자 일어나 손님을 맞이했고, 그분이 가신 후 명함을 확인하니 우리 고장 출신으로 국가기관의 높은 지위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몇 년 후 그 기관의 수장이 된 분이다. 외모가 수려했다면 함께 있었던 분들의 행동은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그 시절은 국민소득이 낮아 생활은 어려웠고, 구걸하는 사람이 많은 때였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오면 불평 없이 가족들이 먹는 반찬과는 다르지만 일정한 장소에 밥상을 차려주었다. 어린시절 나로서는 이해를 못했고, 세월이 한참 흘러 세상 보는 눈이 트일 때쯤엔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자신의 철없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함께했다. 생활이 어렵고 한글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셨지만 많이 배우고 모든 것이 풍족한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세대와의 세상사는 방법과 지혜로움은 많은 차이가 있었고, 행동으로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가진자, 배운자, 양지에서만 살아온 자들이 이제 베풀 때이고, 편견을 없애는데 솔선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차츰 늘어나고 이들에게 아름다운 미소로 격려하는 다수가 있어 차차 참! 편한 세상! 밝은 세상!이 될 것 이라는 희망에 오늘을 편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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