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칼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칼
  • 하동뉴스
  • 승인 2023.06.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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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김명아

할아버지,
이 칼 길에서 주웠어요.

제 자리에
도로 가져다 놓아라.

그 칼 쓰다가는
크게 다친다.

그 후 내 것이 아닌 것은
탐하지 않았다.

-계간 《시와정신》(2023, 여름호)

?【시인 소개】
김명아 / 1950년 계룡시 출생. 1982년 『호서문학』, 1997년 『교단문학』으로 등단. 시집 『영혼의 호숫가에 이는 바람』 등 출간. 호서문학회·대전문인총연합회장. 대전시민대학 <시창작교실 힐링포엠> 강사. 대전광역시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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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손자는 길에서 주운 칼이니 지금부터는 내 것이라 여겼겠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임자 없는 물건이란 없다는 걸. 임자가 있는 물건을 탐냈을 때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어쩌면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일.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조용히 타이릅니다. “제 자리에/도로 가져다 놓아라.//그 칼 쓰다가는/크게 다친다.”
옛사람들은 함부로 남의 물건을 줍지 않았습니다. 인과응보를 믿었지요. 좋은 일에는 상을 받고 나쁜 일에는 벌을 받는다는 그 두려운 믿음이 그들의 삶을 올곧게 지켰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인심도 변해서 주운 것은 물론 남의 손안에 있는 것조차도 빼앗으려고 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선거 때 권모와 술수로 거리에서 ‘표’라는 칼을 ‘주웠다’고 생각하는 위정자들이 세상을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그 칼을 제자리에 도로 가져다 놓으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 칼을 함부로 쓰다가 “크게 다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김남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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