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동에 스며들다
[연재] 하동에 스며들다
  • 하동뉴스
  • 승인 2023.08.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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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주성마을에서 꿈꾸는 소란한 미래

하동 고전면 주성마을에 처음 왔을 때가 떠오른다. 마침 벚꽃이 만개한 봄날이었다. 우리나라에 벚꽃 명소들은 많지만 그 대부분의 명소에는 사람이 꽃보다 더 많기 마련인데 이 마을은 고요하고 한적해서 숨은 벚꽃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중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마을을 찾고 있었기에 좋은 첫 인상을 가지고 이곳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고하리 주성마을’은 하동읍성과 배다리 공원을 품은 마을로 예전에 1일 장터가 열렸던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배다리마을’ 이었다고 하는데 예전 1일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무역상들의 배가 닿는 곳이라고 해서 ‘배드리’ 또는 ‘배다리’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장터였던 마을이라 원래 주민이신 분들도 계시지만 타지 분들도 많이 살아서 그런지 타지 사람들에게 관대한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리와 골목을 다니며 이곳 사람들의 삶을 알아갈수록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에 살아보려는 마음으로 마을에 들어선 첫날. 낡은 미곡 창고 하나가 나를 반기듯 입구에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 창고가 가게 자리로 한눈에 들었고, 식당을 열면 성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마을 분들이나 부동산 소장은 “왜 이런 시골 중의 시골인 이 동네에서 살고, 장사하려고 하냐?”고 만류하면서 앞으로의 식당 운영에 대해 걱정과 조언을 함께 건넸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주위에서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더 자신감이 생기는 성격이라, 다시 한 번 ‘여기가 맞다.’라는 확신을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3개월 동안 큰 뼈대 공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스스로 했다. 직접 하는 게 힘은 들었지만, 같이 내려온 사람들과 미래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준비해 갔다. 우리는 먼저 수제 버거집을 시작으로 자리를 잡고 청년들이 모여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수제 버거집을 준비하는 팀과 법인을 만들어 마을을 활성화할 팀, 이렇게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해 나갔다.

 수제 버거집은 새로운 청년들이 귀촌해 운영한다는 소문이 나서 버거를 먹으러 많은 분이 찾아 주셨지만, 마을을 활성화하는 일은 계속해서 벽에 부딪혔다. 같이 내려온 사람들이 모두 한때 사장을 하던 이들이라 함께 머리를 맞대며 살아가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모두 주도권을 가지려 하는 사람들이라 회의만 하면 싸우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달라 앞으로 나아가는 게 힘들어졌다. 그래서 재정비 끝에 모두 떠나게 되었고 나만 남아 다시 새롭게 청년들을 모아 마을을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청년들이 모인 곳엔 사랑이 꽃 핀다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여러 분야의 사업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여러 마을에서 살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양양과 전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 특히 청년들과 함께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을에서 청년들이 직접 마을을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아이디어와 추진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나의 이야기와 현재 상황, 꿈과 목표를 정리하고 기록했다. 나의 이야기와 상황을 알고 관심을 가진 새로운 청년들이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왔다. 더러 짧은 기간을 경험하고 떠나는 이들도 있었지만 1년 이상 함께하며 살아가는 청년들도 늘어 가고 있다. 새로 내려온 청년뿐만 아니라 하동에서 원래 나고 자란 청년도 그 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도시의 청년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며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청년들끼리 사랑하고 싸우고, 다투고 화해하는 등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겼다.

 내가 가장 뜻 깊게 생각하는 일은 대구에서 온 남자 청년과 부산에서 온 여자 청년이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하동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둘 사이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식 자리에서 둘이 사귄다며 손을 잡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 다들 즐겁게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로 결혼식은 하지 못했지만 둘 사이에 소중한 생명이 찾아와 지금은 세 식구가 하동에서 자리를 잡아 살아가고 있다. 남자 청년은 수제 버거집 실장으로 여전히 주성마을에서 함께 하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돌이켜 생각해보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현재 주성마을에서 사는 근 10년 동안 내 주변에서 생긴 커플들이 내가 아는 것만 스무 커플이 넘는다. 저 출산 고령화가 가장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 어떤 정책보다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간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주성마을에서 준비 중인 사업 중에 하동의 큰 역사가 담긴 하동읍성을 청년들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결혼식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야외 결혼식을 예비부부들에게 실현해주는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업들이 실현된다면 청년들에게도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또한 마을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 마을에도 좋은 일석삼조의 사업이 되리라 예상한다.

-수제 버거로 시작한 마을 활성화 프로젝트 ing

 우리가 만든 수제 버거집은 고하리의 명칭을 따서 ‘고하버거’라고 이름을 지었고, 지금은 연 3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유명한 맛집이 되었다. 고하버거를 보고 다른 지역에서도 제 2의 고하버거를 만들어 귀촌해보고 싶다며 찾아와 현재는 다른 마을 귀촌 프로그램에서 강의와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또 귀촌 성공 사례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는 기회도 있었다. 이렇게 하동군에서 살아가며 일어나는 경험들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 현재에 멈추지 않고 그 전부터 꿈꾸었던 청년들이 직접 하는 ‘마을 활성화 프로젝트’를 다시 준비 중이다. 먼저 하동에 귀촌한 문화예술 청년들과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동군에서 문화·환경 조성사업을 8년간 한 경험이 있는 구름마 대표님을 만났다. 대표님께 나의 꿈을 말씀드리고 또 구상 중인 사업을 말씀드리니 대표님께서 며칠간 고심한 끝에 함께 해주시기로 하셨다. 또 서울에서 7년 동안 공무원을 하다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귀촌한 27세 청년이 함께 법인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이 청년이 합류함으로써 고하리 주성마을에는 10명의 청년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살아온 지역도 하던 일도 다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지금은 1년 넘게 함께하고 있는 청년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독립하려고 하다가 수제 버거집의 직원이 되어 정착하게 된 청년도 있다. 각자 살아온 경험은 다르지만 모두 하동군 고하리 주성마을에서 살게 되었고, 더 나은 마을을 만들고 싶은 공통된 꿈이 있는 청년들이다. 글/하동군 정리/하동뉴스

 이 청년들과 함께 수제 버거집을 시작으로 새롭게 법인을 재정비하여 새로운 청년들도 함께하며 마을을 활성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준비 중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주성마을에 20명 이상의 청년들이 함께 살면서 마을을 활성화해나가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새로운 청년들의 귀촌에 발판이 되고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경험과 노하우를 청년들에게 멘토링 하려 한다. 도시가 아닌 이 ‘조용한 마을‘에서 청년들이 모여 주도적으로 재미있게 자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다소 ‘소란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고전면 최준호 2023 귀농귀촌 수기 공모 수상 작품집. 글/하동군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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