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동에 스며들다-행복 딸기를 재배하는 이정윤 씨
[연재] 하동에 스며들다-행복 딸기를 재배하는 이정윤 씨
  • 하동뉴스
  • 승인 2023.11.2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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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하동이 너무 좋아
‘귀농에서 정착까지.. 그리고 미래의 꿈을 설계하다.’

세월이 참 빠르다. 2016년 어느 날, 한 해 먼저 귀농한 남편의 “공기 좋은 하동으로 고마 내려와라”는 한마디에 이끌리듯 하동으로 왔다. 한편으로는 치매 초기의 시어머님을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시작한 나의 귀농생활은 올해로 7년 차를 맞이했다. 귀농 당시 도시에서 수고한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샀던 새 차의 주행 거리가 어느덧 10만㎞가 넘은 걸 보면 시간의 흐름을 실감한다. 식사만 해결해주면 된다던 남편의 말과 달리 농사에 문외한 내게도 딸기 재배에 참여할 기회(?)가 금방 주어졌다. 농장에 자주 드나드는 만큼 딸기 농사는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묘종까지 직접 키우게 되면서 왜 딸기를 13개월 농사라고 말하는지 체감하게 되었다. 한 해 농사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모종을 키우는 시기와 딸기 수확 시기가 맞물려 농촌의 일상은 바삐 돌아갔지만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인지 그저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특히 새벽녘의 너무나 신선하고도 맛있는 공기는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몇 개월 먼저 농사지으며 이만한 노후 준비가 따로 없다는 농사 초보 친구의 말에 혹한 남편이 준비 기간 없이 농사에 뛰어들었기에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농민을 위해 마련된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 봄에 불어 닥친 돌풍으로 새로 지은 하우스 시설의 파이프가 뽑혀 날아가고 비닐이 군데군데 찢어져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국·도·군비를 지원받아 10%만 자부담하면 하우스 시설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보험을 들어둬서 피해를 복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딸기 수확을 일찍 마무리하고 심어놓은 수박이 나뒹굴고 찢어진 비닐이 마치 어릴 적 운동회 때 휘날리던 만국기처럼 펄럭거리는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귀농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보험부터 들라고 얘기하곤 한다. 보통 귀농하면 겪는 시행착오로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꼽는다고 하나, 우리 딸기농장의 위치는 동네와 다소 떨어진 들녘에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수확 철이면 종종 딸기를 싣고 어르신들을 찾아뵙기 위해 마을 경로당으로 향하는데, 그때마다 어르신들이 풍년을 기원해주시거나 염려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그만큼 힘들기 마련인데, 우리는 난로처럼 너무 가까워서 뜨겁지도 않고 너무 멀어서 춥지도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낼 수 있어 이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다.

“딸기의 내수시장 포화에 따라 딸기 수급 조절을 위해 수출 시장에도 뛰어들었고 단순 딸기 수확만이 아닌 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하동농산물가공센터를 이용하여 딸기잼과 냉동 딸기청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계가 매우 비싸 개별 농장에서는 시도해보지 못했던 동결 딸기 건조 칩도 가공센터에 직접 건의해서 센터 차원에서 기계를 도입한 후 올해부터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봄에 겪은 돌풍을 교훈으로 삼아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심한 나는 우선 귀농(창업)교육부터 시작해서 최고경영자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체계적으로 농사에 대해 이해하고 수경 딸기 재배의 생소함을 없애려 노력했고 함께 교육받은 동기들과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공부하고 오는 날은 남편에게 배운 내용을 계속 이야기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남편도 마이스터 대학 딸기 전공을 추가로 수료했다. 지금은 영농일지를 매일 쓰면서 작년 이맘때는 무엇을 했는지 비교하는 방식으로 농장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배움을 현장에 적용하는 동안 딸기 재배에 대한 산 경험과 노력이 쌓이면서 이제는 초보 귀농인들과 딸기를 재배해 보고자 하는 예비 귀농인에게 멘토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딸기는 특히 충격에 약해서 유통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시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작물이다. 딸기를 잼과 청으로, 또 칩으로 만들어 유통에 적합한 형태로 도시민에게 직거래하기 시작하니 더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모종부터 키운 딸기가 제값을 받고 있어 농사를 지속하는 힘이 되고 있다. 

하동에 귀농해 좋았던 점은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하동농산물가공센터에 동결 건조 기계 도입을 요청해서 받아들여진 것처럼 문을 두드려서 얻은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바로 2022년 창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남 특산물 박람회에 우리 ‘행복딸기농장’이 참가하였던 일이다. 전년도와 달리 참가 신청이 빨리 마감된 박람회 일정으로 뒤늦게 하동군에 혹시 판매 부스 여유분이 있는지 문의했는데 담당자께서 알아보시고는 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다. 그 덕분에 박람회에서 ‘지리산 가는 길에’ 행복딸기라는 브랜드를 알리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당시 판매로 이어진 소비자들 중에서 정기 주문하는 단골 고객이 된 경우도 있어서 현재도 창원과 경남의 다른 도시로 택배를 보낸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매해 농사는 잘된 편이었으나 남편의 뜻에 따라 시설 투자를 통해 농장 규모를 계속 늘리게 되어, 처음엔 3개 동 규모였던 농장이 해마다 늘어 귀농 5년 차엔 13개 동으로 늘어났다. 지나고 보니 지나친 투자는 오히려 손실과 스트레스로 다가옴을 절감한다. 매년 하우스 재배시설을 늘리고 좋은 모종을 키우기 위해 묘종 시설을 수차례 새로 지으면서 늘어나게 된 투자비용도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인력난을 겪었고 진주에서 그날그날 데려온 외국인 근로자들은 숙련도가 떨어져서 하루에 백만 원 가까이 인건비로 지출해도 일의 진행이 더뎠기에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가 통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자꾸 생겨나면서 나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오고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던 문제들이 하나씩 풀리고 있었다. 그 또한 지나가더라는 것….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몸소 겪은 셈이다. 값진 경험이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삶에서 이제는 조화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도 시설도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빼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잡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는 여유가 생겨나고 있다. 스스로 만드는 여유로운 삶은 얼마나 멋진가. 귀농 후 가까운 곳에 친구도 없고 너무 무료하여 이것저것 배우고 취득하기 시작한 여러 가지 수료증 및 자격증이 빛을 발할 때가 되었다.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 식물 세밀화 전문과정, 천연염색 전문과정, 천 아트 지도사, 시니어 뇌 건강 운동 지도사…. 하나하나 배워놓은 것들이 내 안에 쌓여서 여타 교육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걸 보면 참 감사하다.

지난 겨울에는 찾아가는 마을 단위 융화 교육 사업을 벌였는데 지역 주민들이 즐겁게 참여해서 보람을 느꼈다. 이 사업에선 융화교육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체험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음 목표는 나만의 공방에서 나와 같은 여성 귀농인들이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취미 거리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껏 지나온 길처럼 농사도 잘 짓고 스스로의 삶도 잘 돌보며 이제는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무지개 색으로 빛날 내 인생의 후반전을 기대하며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열고 있다. 글/ 옥종면 이정윤 제공/하동군 정리/하동뉴스 hadongnews84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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