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비문증(飛蚊症)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비문증(飛蚊症)
  • 하동뉴스
  • 승인 2024.01.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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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증(飛蚊症)

                                         이영현

내 눈에는 하얀 물고기가 산다
생각의 투명한 뼈가 하느작거렸다
당신이 항상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공중에 반짝이는 이 아름다운 부유물,
너무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고
안과의사가 웃었다
비문증이라고 했다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당신이라는 감옥
참 좋았다.

-시집 『그 잠깐을 사랑했다』(천년의 시작, 2023)

【시인 소개】 
이영현 / 경북 김천 출생. 2004년 《문학과창작》 신인문학상 등단. 시집으로 『밤바다를 낚다』 『그 잠깐을 사랑했다』가 있음. 현재 선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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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증은 눈앞에 먼지나 벌레 같은 뭔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입니다. 엄밀히 말해 비문증은 눈이 느끼는 증상의 일종일 뿐이며, 이 자체가 질병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10명 중 7명 정도가 경험할 정도로 상당히 흔한 질환이라고 하네요.
지금 시인도 “하얀 물고기가” “생각의 투명한 뼈를 하느작거”리는 비문증을 앓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을 병증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리운 사람의 환영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공중에서 반짝이는 이 아름다운 부유물을”을 두고 안과의사는 “너무 사랑”해서 겪는 현상이라고 낭만적으로 풀이해 줍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누군가가 몹시 보고 싶을 때 우리는 ‘눈에 밟힌다’고 하지요. 곱씹어볼수록 참으로 시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눈만 뜨면 눈에 밟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할까요. 평생 동안 그리움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감옥에 수감되어 산다면 이번 생이 얼마나 감미로울까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미워하는 사람보다 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아서 저마다 극심한 사랑의 비문증을 앓는 한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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