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안쪽에 봄이 건축된 적 있다
안이숲
이 봄을 누가 철거했을까
꽃대는 누수가 시작되었고
군데군데 금 간 잎은
눈빛이 흐려졌으며
피었던 꽃을 누가 철거했을까
당신의
내벽에서
한때 분홍이었던 나의 봄을
-시집 『요즘 입술』(실천문학, 2023)
?【시인 소개】
안이숲 / 경남 산청에서 태어남. 2021년 계간 《시사사》로 등단. 2017년 제23회 김유정 신인문학상, 2019년 제19회 평사리문학상, 2021년 제11회 천강문학상 수상. 계간 《시와사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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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 안쪽에 봄이 건축된 적이 있었다. 당신의 마음을 온통 휘어잡으며 설레게 했던 날들이 있었다. 사랑이 꽃피던 시절, 생각만 해도 입 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지던 시절 말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그 이후의 지루하고 따분하고 고달픈 일상의 시간을 우리는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지상의 것들은 영원한 것이 없으니, 봄 가고 여름 오고 가을과 겨울이 차례로 찾아오면서 봄날의 분홍빛 자취를 흔적 없이 지운다. 꽃대는 시들고, 꽃잎은 금이 가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흐려진다. 그 환한 꽃들을 누가 철거했을까? 속절없는 시간인가, 변덕스런 마음인가, 먹고사는 일의 다급함인가. 누가 철거했건 상관없다. 꽃은 지기 때문에 꽃이다.
봄은 꽃이 피어서 봄이지만, 가슴은 꽃이 지고 나서 비로소 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봄을 노래한 시편들은 봄이 지나간 흔적을 노래한다. 실체가 아닌 흔적으로 느끼는 일은 아련하고 아프다. 그것이 화려하고 소중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부재(不在)를 통해 존재(存在)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모든 꽃잎은 떨어질 때가 더 아름답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남호 / 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