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하동 전투
[노년의 고동소리]하동 전투
  • 하동뉴스
  • 승인 2019.06.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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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필자는 국회의장을 지낸 정래혁 예비역 육군 중장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그는 6·25전란 때 적이 하동읍을 점령했던 하루 앞 날 섬호정에서 화개 쪽과 전남 옥곡 방면에서 넘어오는 북한군 동향을 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고 했다. 그 때 그의 신분은 육군 중령, 채병덕 영남지구 편성군 사령관 부관, 그는 채 사령관이 저격당했던 하동읍과 적량 경계 우치(牛峙) 고개 그 현장에 서서 필자에게, 그가 채 사령관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 내용을 현실감 있게 말해 주었다.

그는 섬호정에서 국도 19호선을 통해 하동읍 만지 마을로 기어 내려오는 북한군 행렬을 보고,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아 서둘러 퇴각, 국도2호선을 따라 진주 방향으로 향했다. 후퇴 길에 북천 빙옥 삼거리에서 ‘하동 수복’을 목표로 들어오는 채병덕 사령관을 만났었다. 그는 “하동은 안 됩니다! 진주로 갑시다!” 했다. 채 사령관은 “나는 하동을 수복해야 해! 너는 밤에 고생했으니 진주에서 쉬어!” 이런 말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게 마지막 이었다 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적량 동산리에서 고전 쪽으로 고개를 넘어온 미군 두 사람을 봤다. 처음 보는 외국 군인이었다. 그들은 총도 없고 군복을 완전히 벗은 팬티 차림이었다. 온 몸이 땀범벅이었다. 마을 이장이 미군에게 밥과 삶은 감자를 내놨다. 미군은 하얀 쌀밥은 본 체 만체하고 감자를 집어 들며 “숄트! 숄트!” 라고 했다. 일제 때 징용당해 태평양 전쟁에 투입 됐다가 미군 포로가 돼 살아 돌아왔던 이장은 미군과 통했다. 이장은 즉시 소금을 찾아 줬더니 감자를 찍어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감자로 배를 채우고 길을 나서며 지도를 꺼내 진교 발꾸미를 손가락으로 짚고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었다. 이장은 그들을 고개 넘어 신작로 큰길까지 안내해 줬다. 그들은 고맙다며 손에 찼던 노란 금딱지 손목시계를 풀어 주었다. 뒷날 이장은 지방 공산당에게 끌려가 반송장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이역(異域)만리 먼 타국 땅에서 패잔병 신세로 길을 헤매던 그들 두 미군이, 살아서 고향에 돌아 갈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1950년 7월 24일,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패전 책임이 큰 채병덕 소장을 불러,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부상병들을 재편성, 그들을 데리고 전투에 나가라고 명령 했다. 이른바 영남지구 편성군사령관, 신성모 장관은 덧붙여 “하동은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요지라 진주와 사천으로 향하는 통로다. 필히 그 지역을 고수해야 합니다!” 고 역설했다. 채 사령관은 신 장관에게 명령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부관 정래혁 중령을 대동하고 하동읍에 들어와 분위기를 살폈다. 그러나 상황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 그대로였다. 채병덕은 정래혁 부관을 하동에 남아 적정을 살피도록하고 자신은 진주로 되돌아가 출전준비를 했다.

진주에 주둔한 미군 19연대장 무어 대령을 만나 ‘하동 수복 작전’을 도와 달라 했다. 이리하여 채 사령관은 비공식적으로 미군 19연대 고문관이 되어 작전을 지휘했다. 하동으로 진출한 미군은 돗트 중령이 이끄는 19연대 3대대. 그러나 7월 27일, 한국군과 미군 연합 부대가 하동읍이 내려다보이는 우치 고개에 이르러 적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북한군 척후병이 채병덕 사령관 눈앞 5m 거리까지 근접 했다. 채 사령관은 “너희들은 적군이냐? 아군이냐?” 고 고함을 질렀다. 대답이 있을 리 없었고 따발 총알이 채 사령관 두부를 관통하고 말았다. 전투는 사나운 박격포 공격을 퍼 부운 북한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이튿날 조사 결과 미군전사 2명, 부상 52명, 행방불명 349명으로 파악 됐다. 더욱 기막힌 일은 한국의 직전 참모총장이 전투 현장에서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북한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번 전투는 북한군의 유인책에 걸려든 국군과 미군의 처참한 패전이었다. 두 달 뒤 하동이 수복되고 동산리 하천변에서 발견된 미군의 시신이 313구였다. 미국은‘하동전투’를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욕스런 전투로 적어 두었다. 내가 본 패잔병 미군 두 사람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는데 생사가 궁금하다. 6 · 25가 다가온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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