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연산군의 폭정 흔적
[노년의 고동소리] 연산군의 폭정 흔적
  • 하동뉴스
  • 승인 2019.10.0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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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고장 옥종 삼장마을에는 치마 무덤이 있다. 마을에서 조선 초엽 세 번 장원 급제한 인물이 태어났었기에 마을을 통상 ‘삼장원동’이라 일컫다가 ‘삼장’이라 고쳐 불리 우고 있다. 유서 깊은 지명을 남긴 주인공은 곧 조선 연산군 때 한창 나이로 목숨을 앗긴 조지서(趙之瑞)였고, 마을 동산에 그의 혼이 묻힌 세상에 둘이 없는 치마 무덤이 있다.  조지서는 본관이 임천(林川). 이곳 옥종에서 태어나 초시와 중시(重試)까지 모두 세 번을 장원으로 뽑혔던 수재였다. 그는 단종 2년(1454)에 태어나 성종 5년(1474), 21세 나이로 관직에 들어갔다. 성종이 특별히 그의 재능을 아껴 아들 연산군에게 ‘중용하라’는 지시를 내릴 만큼 우뚝해 보이는 인재였다.

 그러나 운이 어긋나서였는지 성종은 연산군이 세자였을 때 조지서를 세자를 훈육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보덕(輔德)에 임명, 세자를 가르치게 했다. 그리하여 조지서는 학문을 소 닭 보듯 하던 연산군과 악연을 맺고 말았다. 강직한 성품의 조지서는 싹수가 노랗게 뵈는 연산군을 제대로 한번 가르쳐보려고 무척 마음을 썼다. 조지서는 말을 듣지 않는 망나니 연산군을 다잡아 “부왕께 여쭈겠다!”며 위협을 자주 했다. 연산군은 오히려 콧방귀만 끼었다. 심지어 연산군은 이를 갈며 ‘내가 왕이 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공갈성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세자 훈육을 책임 진 조지서는 기가 막혔다. 마침내 연산군이 등극하자 조지서는 몸을 피해 경상도 창원부사로 내려왔다.

 하지만 연산군의 폭정이 세상을 어지럽히자 곧 벼슬을 버리고 향리 옥종에 숨어 버렸다. 어릴 때 자신을 엄대(嚴待)했던 조지서에 대한 감정을 되새긴 연산군은, 기어이 그를 찾아 한양으로 묶어 올려 참혹하게 죽여 분풀이를 했다. 연산군 10년(1504) 윤4월의 일. 조지서 생애 51년, 시신을 맷돌에 갈아 쓰레기처럼 한강에 버렸다. 그 해가 갑자년이었다. 역사는 이를 선비들이 몰죽음을 당했다는 의미로 갑자사화(士禍)라 적었다. 조지서는 옥종 집에서 죽음의 길에 나서기에 앞서 부인 정씨와 마주 앉아 눈물로 마지막 영결(永訣)을 고했다. “내 이번 길이 반드시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길일 터인데, 조상의 신주를 어찌 할꼬!” 눈물을 쏟는 남편의 모습에 기가 막힌 정씨 부인도 울면서 대답했다.“마땅히 죽음으로써 조상의 신위를 보전하리다!”. 조지서는 처형되고 가산은 적몰되었다. 집은 헐려 물웅덩이로 변하고, 정씨 부인은 관가 노비로 보내졌다.

 이때 친정아버지 정윤관(鄭允寬)이 딸을 찾아 타일렀다. 정윤관은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증손이었다. “집이 패했으니 본가로 돌아와 살아라!”
이에 정씨 부인은 서슴치 않고 결연히 대답하였다. “남편이 저에게 조상의 신주를 부탁 했고, 저가 죽음으로써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였아 온 데, 어찌 배반 하오리까!. 마침 남편의 첩실이 작은 집을 갖고 있으니 거기에 의탁하고자 합니다!”. 이리하여 정씨 부인은 신주를 품에 안고 조지서의 첩실 집으로 들어가 몸을 의탁 했다. 그녀는 날마다 산속을 헤매며 도토리를 비롯한 나무열매와 칡뿌리 등을 캐 먹거리를 장만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엎드려 곡하며 제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태(두 해) 뒤 마침내 폭군 연산이 쫓겨나고, 조지서는 죄가 벗겨져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이에 부인 정씨는 비로소 한걸음으로 한양까지 달려 올라가 조지서의 시신이 버려졌다는 한강물을 바라보고 한참동안 소리 내어 울었다. 곡을 마친 정씨 부인은 치마를 벗어 강물에 적셔 초혼(招魂)의 예를 갖춰 고향 마을에 돌아와 무덤을 지으니, 이가 곧 세상에 둘도 없는 치마 무덤이다. 훗날 한이 서린 생애를 마감한 정씨 부인의 시신도 자기가 묻어 둔 초혼 치마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그녀의 치마와 나란히 묻혔다. 500여년이 지난 옛 일이지만 옥종의 ‘치마 무덤’은 희대의 폭군 연산군. 그를 가르쳤던 세 번 장원 수재 조지서, 열녀 정씨 부인 셋이 어울려 남긴, 세상에 달리 찾아 볼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대한 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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