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연말 술 마시기
[노년의 고동소리]연말 술 마시기
  • 하동뉴스
  • 승인 2019.1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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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수년전에 겪은 일이다. 그 때 나는 하동읍장이라는 공직에 있었다. 어느 해 가을 강력한 태풍이 들판을 휩쓸어 이곳저곳 벼가 쓸어져 공무원들을 긴장 시켰다. 나는 아침나절 서둘러 벼 세우기 노력지원에 나가야 했다. 출장 준비를 하려 집무실에서 서성거렸다. 그때 한 노신사가 들어 왔다. 나는 그 노인의 외모를 보고 순간적으로 짐작 했다. ‘전직 고위공직을 지내고 노후에 어떻게 용돈이나 벌어 볼까하고 관공서를 찾아 세일즈를 하는 분이구나’. 그는 자리에 앉기 전에 명함부터 내 밀었다. 하동읍 화산동 흥한아파트에 산다고 돼 있었다. 하동 사람이면 대개 안면이 있는데 전혀 생소한 얼굴이라 신분을 캘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흥미가 일었다.
 
 “마을 이장을 아십니까?”. 그는 온지가 얼마 안 돼 아직 모른다 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간 뒤에 그는 솔직히 털어 놨다. 그는 ‘고향이 순천인데 몇 십 년 전에 군대복무 중 사고를 쳐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아 25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나와 보니, 집안이 흩어져 고향이 없어져 버렸다’는 게 아닌가. 나는 호기심이 일어 들판에 나가는 일을 잠간 접고 사정을 듣고자 했다. 그는 군대에서 사단 매점인 PX에서 근무했는데 어느 해 연말 저녁에 PX에서 몇몇 동료들과 송년 술판을 벌였고, 모두가 술에 취해 술자리가 싸움판으로 변해버렸다. 내 앞에 앉은 이 손님은 그 때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사단장 당번을 총으로 쏴 죽이는 끔직한 사고를 저질렀다.

 대형 군기 사건이라 무기징역 선고를 받아 25년 징역살이를 하고 모범수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술 때문에 신세 망친 인생, 또 한 사람 보네!’라고 생각 했다. 그는 감방에서 글씨 공부에 매달렸고, 나를 찾은 사연은 감옥에서 닦은 서예 솜씨로 쓴 병풍 글 폭을 한 벌 팔려고 찾은 것이었다. 두툼한 서류 봉투에서 내 보이는 붓글씨는 제법 품위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글씨라도 살인자의 작품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10만 원을 주고 한 벌을 사서 아무 말 않고‘글씨가 참 좋다!’며, 어느 직원에게 줘버렸다. 조선 왕조 27인 왕들의 평균 나이는 46세, 생애는 호화의 극치였으나 수명이 지극히 짧았다. 회갑을 넘긴 임금은 태조·정종?·광해군·영조·고종 다섯뿐이다. 가장 오래 산 왕은 83세를 넘긴 영조였다.

 영조의 장수 비결은 단한가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었다. 성군 세종과 영조는 술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민초들을 생각하여 ‘계주교서(戒酒敎書)’라는 금주령을 내려, 애주가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지난 해 술 때문에 얻은 질병 치료를 받은 환자는 연 2880만 명이고 급여액이 2조 2000여억 원이나 된다고 건강보험공단에서 밝혔다. 게다가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경우 취객들로부터 폭력을 당해 목숨을 잃거나 성폭력 등으로 입은 피해는 계산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건강을 지키느라 술을 마시지 않고 살아가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술 좋아하는 취객들 치료비 대느라 지갑을 털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것 같다.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한국이 세계 최고라 했다. 비교적 일찍 세상을 뜬 망자의 장례식장에서 오가는 말 가운데 흔히 듣는 말이 ‘그 사람 젊어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였다.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 뜻있는 지식인들은 ‘대학에서 신입생을 환영한답시고 술판을 벌이는 문화’ ‘무슨 의미 있는 모임이나 친목 행사에는 반드시 술이 있어야하고 술을 권하는 게 예의라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아는 문호 세익스피어는 “술은 욕망을 주기는 하지만, 행위능력을 마비시켜 버린다!” 했다. 연말에 흔한 질펀한 술자리를 경계하자.  사)대한노인회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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