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술 권하는 문화
[노년의 고동소리] 술 권하는 문화
  • 하동뉴스
  • 승인 2020.02.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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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저녁, 열두 제자들이 마련한 이른바 ‘최후의 만찬’에 포도주가 있었다. 의미 있는 자리에는 술이 있어야 했다. 회포를 푸는 모임에 술이 없다면 얼마나 냉냉할까?. 조선조 태종은 장자이면서 세자 되기를 마다한 난봉꾼 양녕대군 다음으로 차남 효령대군을 후계자로 삼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셋째 충녕대군에게 바톤을 잡혀 주었다. 효령을 재껴버린 이유 중의 하나가 술에 약한 효령이 명나라 사신을 맞는 좌석에서 사내다운 강건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였다. 알코올 성분은 인간의 뇌에서 이성적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을 마비시켜 버린다 했다. 그래서 술은 번뇌를 떨쳐 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도가 넘치면 사람의 운명을 틀어 버림은 물론 큰 사회적 짐 덩어리를 낳는다. 음주 운전 단속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나 술로 인해 빚어진 사고나 얻은 질병에 투입되는 보험 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계산이 힘들 것 같다. 체질에 따라 술을 잘 이겨내기도 하고 조금 마셔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술 잘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술을 억지로라도 권하는 것을 멋으로 여기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다르다.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고형곤(高亨坤) 박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아들 고건(高建)이 고등고시에 합격, 공직에 나갈 때 엄히 당부 했다. “술 잘 먹는 사람이라는 소릴 듣지 않도록 하라!”. ‘술 잘 먹는 게 자랑일 수 없다’는 아버지로서의 가르침이었다.

 70년대 중반, 새마을 운동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때였다. 마을마다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느라 주민들은 바빴다. 어느 마을에서 벌어졌던 기막힌 일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초겨울, 들판 농로 확장 공사가 주민 자체사업으로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총 동원되어 괭이질을 하던 어느 날 쉬는 짬에 새참을 먹는데 의례히 소주잔이 오갔다. 이윽고 술이 거나해진 젊은이 둘이 ‘누가 술이 쎈 지 내기하자’며 일을 벌였다. 지는 쪽이 술값을 모두 계산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되병 소주’가 유행이라 두 젊은이는 큰 소주병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번갈아 잔을 주고받기 시작 했다. 몇 순배 술잔이 왔다 갔다 하더니 드디어 한 젊은이가 옆으로 쿡 쓸어져버렸다. 상대방은 우쭐대며 한잔을 더 입에 들어붓더니 두 손을 번쩍 들고 ‘이겼다!’하고는 역시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점심때가 되어 모두 집으로 들어가는데 술에 쩌려 버린 두 사내는 뻗은 채 말이 없었다. 동민들은 양지 바른 짚가리에 둘을 나란히 눕혀 놓고 각자 헤어졌다. 오후에 작업장에 나온 동민들은 기막힌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기에 진 젊은이는 숨이 붙어 있었으나  이긴 젊은이는 조용 했다. 그까짓 술값 몇 푼에 목숨을 바친 꼴이랄까. 숨을 멈춘 자는 하필 젖먹이 얘까지 철부지 자식들이 줄줄이 딸린 40대 초반의 가장이였다. 90년대 일본의 환경시설을 견학하려 일본에 갔을 때였다. 어느 날 호텔 프론트에서 만난 두 사람 재일 교포가 차를 한잔 나누자 했다. 그들은 내게 부탁할 말이 있다 했다. ‘한국에 돌아  가시면 제발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을 고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고국 동포들에게 언제나 그 당부를 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 ‘술을 잘 먹는 남자가 큰일을 한다.’는 등의 한국인들 말들은 일제가 한국을 지배 할 때 한국인들을‘술 잘 먹는 민족’으로 망가뜨려 자기들 지배력을 키우고자 지어 낸 말이라 했다. 그럴 듯 했다. 박근혜 정부 때 현직 국회의장이 진주에 왔다. 그는 개인적인 일을 겸해 서부 경남지역을 돌아보던 길이었다. 그는 의사 출신 정치인이었다. 어떤 연고로 나도 일행이 되어 진주 시장이 마련한 저녁 자리에 함께 했다. 저녁상에 술이 나왔다. 진주 시장이 환영 인사를 겸한 건배사를 했다. 주빈으로 첫잔을 비운 국회의장은 잔을 내려놓더니 “술은 권하지 않기입니다. 더 마시려면 자작하기로 합시다!” 했다.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반가운 제의였다. 국회의장은 더는 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을 적게 마시면 속이 편하다 했다. 나는 속만 편한 게 아니라 세상이 편한 것이라고 속으로 뇌까렸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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