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여론이 실종된 郡, 진실도 정의도 없다
[발행인 칼럼]여론이 실종된 郡, 진실도 정의도 없다
  • 하동뉴스
  • 승인 2020.02.24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동 사회에 여론이 실종됐다. 일방적인 주장만 있다. 위원회, 보고회 등이 수시로 열리고는 있으나 누구도 쉽사리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나의 주장은 곧 정책이 된다. 비판 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사안에 대한 사회단체들의 반론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또한 일방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자치연대가 정의를 도출하는 최선의 방법이 갑론을박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 없이 내부의 의견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기 일쑤다. 일부 기자회견도 대부분이 행정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일부는 보여주기식 기자회견이라는 말들을 한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자치연대나 언론의 비판이 정책을 바꾸지도, 새로운 여론을 만들지도 못하는 이유다. 여기에 군민을 대변해야 할 군의원 역시 한 사안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결과는 뻔 했다. 집행부 측이 원하는 대로 통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자치연대는 자치연대 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언론 역시 언론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군민을 대표하는 군의회 의원들은 자치연대나 언론과는 달라야 한다. 한 예로 집행부 본예산 심의를 하면서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 예산통과는 없다고 해놓고도 나중에는 슬그머니 예산을 통과해 준 것이다. 군수의 말 한마디가 곧 행정법이다. 군수의 눈에 난 공무원들은 온갖 수모를 겪고 있다. 그 이유가 행정추진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똑 같은 일인데도 눈에 든 공무원은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낳은 자식과 품에 안은 자식과의 차별화는 그 당사자에게는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가령 공무원의 일처리가 잘못됐다면 집무실에 불러다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수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소리만 듣고 싫은 소리를 하면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모순 중에 모순이다. 어느 누구도 싫어하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는 없다. 본지가 최근에 한 민원인을 만났다. 그 민원인은 군수를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군수로 있을 때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왜 이런 민원을 가지고 와서 따지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두 번의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정은 연속성을 갖고 있다. 어떤 일이든 담당자나 계·과·국장의 답변이 안 되면 민원인 누구나 군수나 부군수를 찾아 그 진위를 물을 수 있다. 그런데 민원인이 묻는 것을 따진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정말 위험한 판단이다. 공무원도 민원인도 다 군민이다. 군민들의 민원을 귀담아 들어주는 군수야 말로 진정한 의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의인은 아니더라도 군민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청취해 주는 군수가 되었으면 한다. 자칫 한 두 번의 실수로 하동군정이  어떤 길로 갈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회오리로 변할 지도 모르는 돌풍 속에서 하동군정을 지키는 힘도 오로지 뿌리 깊은 여론이다. 몸을 낮추어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건강한 여론은 군정의 정의이자 진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