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의 고동소리] 헛된 꿈
[노병의 고동소리] 헛된 꿈
  • 하동뉴스
  • 승인 2020.02.24 0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 총선 바람이 불어오니 '꿈을 꿨다가 쓴맛 다시는 인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선거를 앞두니 1960년 나라를 피로 물들였던 '3·15 부정선거'가 머리에 떠오른다. 3선 대통령 끝을 맞은 이승만(李承晩)은 대통령이라는 왕관을 쓴 채 염라대왕 앞으로 가겠다는 '꿈', 병으로 비실거리는 몸이지만 꼭 부통령이 돼 이승만이 어떻게 되면 기필코 그 자리에 앉아 보고야 말겠다는 이기붕의 '꿈', 남편 등을 타고 경무대 생활을 반드시 해보겠다는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朴瑪利亞)의 '꿈'이 나라를 흔들었다.

 이승만은 '꿈'을 이룰 첫 꼼수로, 자기를 따르는 충성심을 갖춘 돈 키호테 닮은 최인규(崔仁圭)를 선거 주무 장관인 내무부 장관에 앉혔다. 최인규는 사람 가면을 쓴 여우였다. 방부제를 놔야 할 자리에 곰팡이 덩이를 놓은 꼴이 됐다. 야당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맞선 조병옥(趙炳玉)이 마침 신병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최인규는 조병옥이 몸을 추스리기 전에 판을 짜기로 했다. 궁리 끝에 4대 대통령?5대 부통령 선거를 3월 15일에 치룬다고 서둘러 발표 해버렸다. 병상의 조병옥은 펄쩍 뛰었다. 치민 화가 병을 더 악화 시켰다. 그전 관례대로라면 5월에 선거를 치르는 게 정상이었다. 일격을 당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조병옥은 2월 7일 부통령 후보 장면과 함께 대통령 후보 등록을 마치고 곧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 병원은 위험 했다. 2월 17일 워싱턴 월트리드 육군의료센터에서 위장 수술을 받던 조병옥은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을 멈추고 말았다. 내무부는 긴급히 '조병옥 박사 서거를 애도함'이라는 표어를 방방 곡곡에 도배질, 조병옥의 죽음을 신바람 나게 알렸다. 국민들은 가슴에 무거운 바위를 얹은 듯 답답해졌다. 3대 대통령 선거 때 신익희(申翼熙) 민주당 후보가 급서, 이승만은 대권을 거저먹더니 이번에도 꼭 빼닮은 현상이 빚어진 것이었다. 1차 목표를 거의 달성한 최인규는 전국 시장·군수·경찰서장들에게 부정선거에 목숨을 걸라는 엄명을 하달.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이기붕을 반드시 당선 시켜야 한다. 선거 끝난 뒤에 문제 됐던 나라가 어디 있었던가?”

전국의 선거구와 투표소에서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목공소는 가짜 투표함을 짜느라 바빴고, 인쇄업자는 가짜 투표용지를 인쇄하고 공무원들은 가짜 투표용지에 이승만?이기붕 기표를 하느라 밤을 새웠다. 투표소에는 엉터리로 기표된 투표지가 가득 담긴 유령 투표함이 설치 됐고, 투표 개시 전에 투표함이 비었는지를 확인하려는 야당 참관인은 난동 죄로 쫓겨났다. 한 기표소에 세사람씩 무더기로 들어가 조장이 시키는 대로 표를 찍게 했다. 장면 지지표가 가득 담긴 투표함은 바다에 던져 버리고, 이기붕 지지표를 무더기로 담은 가짜 투표함을 개표장에 싣고 왔던 곳도 있었다. 대구 어느 개표소에서는 이기붕 5000표, 장면 32표라는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내무부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이기붕 표가 100% 넘을 것 같다」는 해괴한 보고 때문이었다. 전국의 경비전화가 다급히 울렸다.

'「이승만 80%, 이기붕 70?75%로 조정하라!'. 최종 개표결과는 대통령은 따질 것 없었고, 부통령 득표율이 배꼽을 잡고 웃게 했다. 이기붕 79% 장면 17.5%. 억지로 정·부통령 당선을 조작한 최인규도 사실 '꿈'이 있었다. 85세의 이승만, 부축해야만 걸을 수 있는 이기붕, 둘 다 저승식구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으니, 다음 차례는 혹시 자기가 될 수도 있다는 '헛된 꿈'이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몰래 망명, 이기붕 일가는 광복이후 최초의 일가족 집단 자살, 최인규는 사형장의 올가미에 졸려 저승사자와 황천으로 동행하였다. 그들의 '꿈'은 참으로 헛되고도 헛됐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회장 정연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