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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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뉴스
  • 승인 2020.03.3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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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본래는 청정한 목숨이었다 (淸靜爲天下正-청정위천하정)

大直若屈(대직약굴)
大巧若拙(대교약졸)
大辯若訥(대변약눌)
靜勝躁 寒勝熱(정승조 한승열)
淸靜爲天下正(청정위천하정)

크나큰 곧음은 굽은 듯하고 크나큰 기교는 처진 뜻하며 크나큰 말은 어눌한 듯하고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차가움은 뜨거움을 이기며 깨끗함과 고요함은 천하의 바른길이다. <노자 45장 참조>

홍수가 져 산사태가 나서 강물이 흙탕물로 변했다고 더러운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둥둥 떠내려가니 강물의 흙탕이 더러워진 것이다. 밥상 위에 있는 밥은 깨끗하고 화장실의 똥은 더럽다는 생각은 사람의 짓이지, 사람 빼고 먹고 싸야 사는 모든 목숨들에게는 그 어느 것하나 청정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말하자면 사람이 없는 곳이면 언제 어디나 오로지 맑고 고요할 뿐이어서 본래 천지자연은 청정할 뿐이다.

천지자연에는 참으로 더러움이란 없다.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 청정할 뿐이다. 맑고 깨끗한 청에다 고요할 정을 더한 청정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길거리에 끌려와 가로수 노릇 해야 하는 탓으로 이른 봄마다 인간에게 수모를 당하는 은행나무를 떠올리면 청정이라는 말씀을 저마다 나름대로 새겨볼 수 있을 성싶다. 사다리차를 질러대 놓고 전기톱을 들고 올라가 사정없이 가지들을 잘라내 까까중머리처럼 해놓고도 한여름이 되면  어느새 잘려진 가지들 끝에 새 가지들을 무성하게 이어내 잎사귀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로수 은행나무들을 덥다고 투덜대며 오고가는 인간들에게 그늘을 제공해준다. 모진 수모를 당하고도 변함없이 가지를 뻗고 잎을 내는 그런 가로수 은행나무의 모습이 바로 곧 청정한 모습이다. 어찌 가로수 은행나무만 그렇겠는가. 사람을 빼고 나면 청정하지 않은 것이란 천지에는 없다. 개똥 위에 앉아 밥 찾는 쇠파리도 청정한 목숨이다. 그래서 항상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다 하는 것이다.

땅에다 한 자리를 잡고 사는 초목 덕으로 금수나 곤충이나 인간 등등이 산다. 땅하고 물하고 바람만 있다고 온갖 목숨이 사는 것만은 아니다. 푸나무가 없으면 먹고살 길이 없어진다. 만일 초목이 변덕을 부린다면 그 어느 하나 살아갈 길이 없다. 새벽이슬로 흠뻑 젖은 싱싱한 풀잎을 유심히 본 일이 있는가? 있었다면 그 순간 바로 청정함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게다. 사람이 그 청정함을 한 순간만이라도 되찾는다면 그 순간만은 싱싱한 풀잎처럼 마음속이 천하에 두루 통하는 정도를 밟아볼 수 있는 일이다. 청정하기만 하면 정한 길이 절로 열리니 말이다. 정도를 바른 길이라고만 되뇌어서도 그 깊은 뜻을 새기기 어렵지 싶다. 어찌하면 바르다는 것일까? 헷갈림에 휩쓸리지 않으면 올바름을 누릴 수 있고 뒤바뀜에 휩쓸리지 않으면 바름을 누릴 수 있고 치우침에 휩쓸리지 않으면 바름을 누릴 수 있다. 정도의 정이란 미혹을 뿌리치고 전도를 뿌리치고 극단을 뿌리치면 어느 마음속이든 지남철 같아 정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동서남북을 제대로 찾아 헤맴 없이 일생이라는 강물에 띄워진 뗏목을 타고 청정한 유람을 누릴 수 있을 터이다.

인간이 사도 즉 그릇된 길로 꼬여듦이란 세상 탓이 아니라 오로지 제 탓일 뿐이다. 청정한 마음을 버렸으니 그 마음은 바름을 잃었고 그 바름을 잃었으니 하는 짓마다 헷갈리고 뒤바뀌고 치우쳐 그릇된 길로 저 스스로 찾아들고 만다. 인간도 본래는 청정한 목숨인데 그놈의 욕심덩어리 탓으로 더럽게 탈바꿈해 정도가 어디 있어?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불쌍한 인간으로 드러나게 된다. 청정한 마음은 겨루기가 아니라 어울림을 좇아 둘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길을 찾는다. 그 하나 되는 길이 곧 정도라는 길이다. 그 정도를 어렵사리 직굴-교졸-변눌-상하-장단-대소-다소-귀천-호오 등등을 둘로 나누어 상대 지어 겨루어 시비 걸기를 벗어난 길이라 한다. 정말이지 푸성귀의 싱싱한 잎사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은 정도를 따라 청정하게 숨질하고자 욕심의 비개덩이를 남보다 먼저 잘라내야 함을 안다.

■작은 생선 삶은 어머니처럼(若烹小鮮-약팽소선이라) 
治大國(치대국)
若烹小鮮(약팽소선)
以道?天下(이도리천하)
其鬼不神(기귀불신) 

큰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삶음과 같고 대도로 써 세상을 마주하면 그 귀신도 신풀이하지 않는다.<노자 60장 참조>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가족을 먹이려고 부엌에 들어가 작은 생선을 삶는 어머니 같아야 한다. 밥 짓는 어머니의 마음가짐으로 나라를 다스리라 함은 일러둔 말씀이 <약팽소선>이다. 큰 나라를 다스릴수록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하라는 것이다. 치자가 흥청망청하면 백성은 그만큼 배고픈 설움을 당해야 하기에 큰 생선을 삶듯 다스리지 말고 작은 생선을 삶듯 다스리라 한다. 나라 살림을 정성껏 아끼고 아껴서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어머니같이 한다면 어느 나라가 백성을 배고프게 하겠는가. 나라 살림살이는 그 무엇이든 세금으로 꾸려가게 된다. 세금이란 것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모든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백성이 낸 세금을 작은 생선처럼 여길수록 그 나라 백성은 편안히 살아간다. 백성이 낸 세금을 고래처럼 여기고 턱턱 잘라내 퍽퍽 축내는 나라일수록 백성을 불안하게 하고 굶주리게 한다. 왜 우리는 아침 인사를 밤새 안녕하셨냐느니  진지 드셨냐느니 나누면서 살았겠는가? ‘춘향전’에서 고약한 원님 변학도가 펼치는 잔치에 끼어들어 ‘금잔에 넘치는 맛있는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그득한 진수성찬은 만백성의 고혈이라’ 시를 남기고 ‘어사출도’ 불호령을 내리는 대목을 만나면 누구나 왜 통쾌하다 하는가? 작은 생선 삶듯이 나라를 다스리란 말씀을 팽개쳐 버리고 ‘지화자 놀자’ 질펀하게 나라살림 거덜 내는 무리를 혼찌검 내주는 꼴인지라 어느 백성인들 후련해 하지 않을 것인가! 참으로 다스림이란 팽소선 하듯 해야 한다. 삼가 조심조심 살펴 언제나 치우침이 없이 물이 흘러가듯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백성이 가려워하고 아파하는 곳이 어딘지 살펴 이지러지지 않도록 고쳐가야 하기에 작은 생선 삶듯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겨내는 어머니가 작은 생선이라도 삶아 식구들의 허기를 달래주려 하는 간절한 마음을 본받기 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란 없다. 이런 어머니 마음이 아니면 작은 생선을 오롯이 삶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무슨 먹을거리든 솥에 넣고 삶자면 물과 불을 잘 다스려야 한다. 쇠고기나 고래고기를 삶자면 살점이 질긴지라 펄펄 끓는 물에 맡겨두고 때때로 주걱으로 휘휘 내저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작은 생선을 삶자면 펄펄 끓는 물에 마냥 맡겨둘 수가 없다. 작은 생선을 너무 세차게 끓는 물에 맡겨두면 살집이 너무나 연약한 까닭에 뭉개지고 만다. 끓는 물이 너무 지나치면 불기를 조금 줄이고 너무 약하면 불기를 조금 올리고 신경을 써서 삶아내야 작은 생선은 먹을거리가 된다. 이는 곧 정성을 다하라 함이다. 정성스러운 미더움이 없어서는 팽소선 할 수 없다. 잘 살아보겠다는 욕심이 앞설수록 작은 생선은 그냥 그대로 삶아낼 수 없다. 물을 끓이는 불과 불을 따라 끓는 물을 따라 작은 생선이 삶아지도록 맡겨두고 불이 넘쳐나 끓는 물이 넘치지 않게 정성을 들이는 미더움이란 무욕이 아니면 비롯되지 않는다. 이렇게 무욕으로 세상을 마주하려면 대도를 본받아야 한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느냐고 어느 경우든 너스레를 떨지 말아야 한다. 구렁이 담 넘듯 이러구러 핑계대면서 빠져나가려 하지 말라 함이 곧 팽소선이다. 이렇듯 정성으로 미더움을 사면 귀신도 빌미를 부리지 않는다. 귀신이란 다름 아닌 자연의 변화가 지어가는 기운이다. 그 기운은 곧 민심으로 드러난다. 민심이 편안하면 귀신도 해코지 않으니 불신이라 한다. 치자가 팽소선 하듯 세상을 다스린다면 백성의 마음속이 흉흉할 리 없다. 본래 민심이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세차면 사나운 불길보다 더 무서운 너울 같아진다. 글/윤재근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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