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한 시간이 지나도록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한 시간이 지나도록
  • 하동뉴스
  • 승인 2020.06.2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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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지나도록
                                                  조은

가난한 동네에서 돈을 주웠다
꼬깃꼬깃한 삶이 느껴졌다

주워도 시원찮을 사람이 잃었을 돈이었다
지갑 하나 못 가졌을 사람의 돈이었다
주운 만큼 더해 돌려주고 싶은 돈이었다

무엇에 놀라 내던지고 갔을 돈이었다
그땐 종이짝 같았을 돈이었다

차곡차곡 간추려 들고 서 있었다
문짝 없는 장롱에 기대 서 있었다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시집 『옆 발자국』(문학과지성사, 2018)

【시인 소개】
조은 /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무덤을 맴도는 이유』, 『따뜻한 흙』, 『생의 빛살』, 『옆 발자국』 등이 있음. 제4회 전숙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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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가 돈을 주우면 우리는 ‘횡재’했다고 하지요. 횡재(橫財)란 ‘뜻밖의 재물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횡재수’가 있는 날은 운이 좋은 날로 여기지요. 하지만 이 ‘뜻밖의 행운’은 누군가의 ‘뜻밖의 불운’을 전제로 한 불로소득일 뿐입니다. 이 시는 ‘횡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필 “가난한 동네”를 지나다가 돈을 주웠습니다. 지폐 몇 장이 꼬깃꼬깃 접힌 채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나 봅니다. 돈의 보관 상태를 보면 그 주인의 살림살이를 대강 짐작할 수 있지요. 그 돈처럼 그의 가정형편도 얼마나 꼬깃꼬깃 접혀 있을까요? 십중팔구 “주워도 시원찮을 사람이 잃었을 돈”일 텐데 그걸 주웠다고 ‘횡재’라며 기뻐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주운 만큼 더해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요. 
시인(화자)은 혹시라도 주인이 찾으러 올까봐 돈을 “차곡차곡 간추려서 들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물론 주인은 오지 않습니다. 돈을 돌려주지는 못했지만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고 따뜻해지는 모습인지요. 우리가 돈에서 재물과 탐욕이 아니라, 이처럼 ‘사람’을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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