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알프스 융푸라우에서 상투 생각
[노년의 고동소리] 알프스 융푸라우에서 상투 생각
  • 하동뉴스
  • 승인 2020.08.2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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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 유럽 여행 중 스위스에서 알프스 융푸라우 산악 열차를 타본 일이 있었다. 1912년에 개통되어 오늘날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알프스 산악 열차는, 눈 덮인 산골 나라 스위스 국민을 먹여 살리는 복덕방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는 톱니바퀴 철도로 개설 되고 해발 3454m 고지에 융푸라우 역이 있었다. 만년설이 덮인 정상이 눈앞이었다. 열차는 평균 경사 25도의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중간에 긴 터널도 있고, 창밖에 펼쳐진 늘 푸른 침엽수림은 별천지였다. 

 우리나라 고종 30년(1893). 스위스의 아돌프구에르 첼리라는 사람은 융푸라우 정상까지의 철도 개설을 머릿속에 그렸다. 곧 설계를 시작 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898년 드디어 등산 철도 공사가 벌어졌다. 착공 14년 만에 철도는 완공되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어떠했던가. 기가 막힌다. 나이 찬 장자를 재껴버리고 어린 차남을 왕위에 앉힌 영리한 대원군은, 왕이 어리다는 핑계로 섭정을 단행, 권력을 잡았다. 그는 쇄국으로 나라를 골병들게 몰고 갔다. 강대국의 세계 전략을 외면한 작은 나라의 얼빠진 정치는 ‘이불 속에서 어깨춤 추는 격이다.’ 연못 개구리가 바다를 어찌 알랴!

 20세기 초엽, 영국의 어느 여행 작가가 한반도를 기행 하는 길에 황해도에서 요즘의 도지사격인 관찰사를 만났다. 관찰사가 작가에게 ‘어디서 왔느냐?’ 물었다. 작가는 ‘영국에서 왔다’했다. 관찰사는 ‘영국이 어디 있는 나라냐?’했다. 영국인은 ‘지구 저쪽 조선과 반대쪽에 있는 나라다.’고 했다. 관찰사는 매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럼 거기 사람들은 머리를 땅에 박고 사느냐?’며 물었다. 관찰사 생각은 지구가 평평한데 반대쪽에서 왔다고 하니 사람이 거꾸로 서서 다니지 않을까 싶어서 되물었던 것이다. 영국인은 멍텅구리 미개인이라 여겨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영국인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마을 앞에 하천 개설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 물었다. ‘왜 농토를 파서 개울을 만드느냐?’ 주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기 옆 동네에 들어온 역질이 이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게 개울을 판다’ 했다. 영국인은 배꼽을 쥐고 웃고 싶었지만 참았다. 시골 어느 파락호(破落戶)가 대원군이 젊었을 때의 행실을 흉내 내 보고 싶어 대원군을 찾았다. 넓죽 큰 절을 했는데 대원군은 난(蘭)을 치는데 정신이 팔려 눈길도 주질 않았다. 파락호는 또 한 번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섰다. 순간 대원군이 불같이 화를 내 고함쳤다. “이놈아 내가 귀신이냐! 왜 절을 두 번하느냐?” 파락호는 맞받았다. “아니 처음 절은 ‘처음 뵙는다’는 인사였고, 뒤에 절은 ‘그만 가겠오!’하는 하직 인사였오! 그게 뭐 잘못된 거요?”. 

 천하의 대원군도 파락호의 재치에 말문이 막혔다. 뒷날 대원군은 그 파락호를 ‘보통 놈이 넘는다’ 싶어 영광 군수에 임명하였다. 망해가는 나라 군수 자리는 이처럼 가벼웠다. 고종 32년(1895) 11월 15일, 처음 쓰기 시작한 양력으로는 1896년 1월 1일, 조선 조정은 개혁 정책으로 전국에 단발령을 내려 남자들 상투를 자르라 했다. 고종 임금이 시범으로 상투를 잘랐다. 백성들이 미쳐 날뛰었다. 양반들은 상투를 움켜  잡고 통곡했다. 단발령에 항의하는 의병이 봉기했고 칼로 자기 목을 찔러 죽는 자가 속출했다. ‘내 목을 잘라라! 상투는 못 자른다!’는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니 고종은 도리 없이 단발령을 중지, 단발령 주역 김홍집(金弘集) 총리대신(국무총리)을 역적으로 몰아 책임을 전가했다. 

 이듬해 2월 11일, 김홍집과 농상공부 대신 정병하(鄭秉夏)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폭도들에게 짓밟혀 죽었다. 처참하게 육시(戮屍) 당했다. 육시란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살점을 씹어 맛보는 형벌이다. 김홍집은 개혁 의지로 미개한 국민들을 깨우쳐 보려했지만, 아프리카 토인들 보다 더 낮은 수준의 백성들은 ‘절 까마귀 염불’ 쯤으로 여겼다. 그 무렵 유럽 스위스에서는 자연을 극복하는 융푸라우 산악 열차 개설 공사가 한창이었으니, 그 차이가 너무 컸다. 지금 국민들에게 다시 상투를 틀어 머리에 얹고 다니라면 국민들 반응은 어떨까? 기막힌 역사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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