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김일성은 어떻게 태양이 되었나?
 [노년의 고동소리] 김일성은 어떻게 태양이 되었나?
  • 하동뉴스
  • 승인 2021.04.27 0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 15일은 북한을 ‘김씨 조선’으로 만든 독재자 김일성이 세상에 나온 날이다. 이른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태양절’이다. 북한 인민들은 왜 김일성을 ‘태양’으로 받들게 됐을까. 북쪽 인민들은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 공자까지도 김일성에게는 못 미친다고 여긴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成柱)다. 그의 아버지 김형직(金亨稷)은 일제 때 만주에서 한지(限地) 의사를 하며 큰돈을 벌었다. 그는 독립 운동가들에게 용돈을 챙겨 주는 기독교 민족주의자였다. 독립 운동가들이 공산주의자들과 민주주의 계열로 분열되어 서로 다툴 때, 기독교 신자 김형직은 공산주의자들과 거리를 두었다. 김형직은 36세 나이로 죽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원한을 품고 김형직을 살해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김형직은 아내 강반석(康磐石)에게 아들 성주·철주(哲柱)·영주(英柱)를 데리고 손정도(孫貞道) 목사를 찾아가라 일렀다. 강반석은 독실한 기독교 목사 강양욱(康良煜)의 딸이었다. 손정도 목사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로 만주 길림에서 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었다. 급작스럽게 고아 신세가 된 김성주는 그때 13세 나이의 소년이었다. 김성주는 손정도의 보살핌을 받으며 교회 찬양대에서 찬송을 열심히 했다. 손정도는 한국의 이승만 정권 때 초대 해군 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을 역임, 북한 공산군 격퇴에 크게 공을 세웠던 손원일(孫元一)의 아버지다.

 김성주 3형제는 모두 독립운동에 뛰어 들어 활약 했다. 김성주는 일제에 쫓겨 소련으로 피신, 스탈린을 만났다. 광복 후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김성주는 ‘김일성(金日成)’으로 이름을 바꿔 갑작스럽게 해방 정국의 평양에 나타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남한을 점령한 미국은 별 세 개 육군 장성을 보내 어정쩡한 군정을 폈다. 미군정은 정치 자유화라는 통치 슬로건으로 정당 조직을 자유화 했다. 서울을 비롯한 3·8선 이남도 공산당이 날뛰는 아수라장이 됐다. 그 틈에 남한은 최초의 합법 정당 ‘조선 공산당’이 박헌영(朴憲永) 주도로 조직되어 활개를 쳤다. 일찍부터 소련의 힘에 의해 북쪽의 통치자가 된 김일성은 북한을 공산당 천하로 만들었다. 남한은 다행스럽게 이승만(李承晩)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살아 있어 미국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공산화는 막을 수 있었다. 북쪽 김일성은 민심을 끄는 재주가 용했다. 남의 땅을 빌려 먹고 사는 소작농들에게 땅을 나눠 주어 땅 없는 농민들의 평생소원을 풀어 주었다. 몇 안 되는 지주들이 노예처럼 부리던 농민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해방 시켰던 것이다. 강원도 금화 고을 어느 아낙네가 공짜로 얻는 땅에 감자 농사를 지었다. 농사가 잘됐다. 아낙네는 감자 한보따리를 싸서 이고 김일성을 찾아 갔다. 아낙은 김일성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장군님 덕택으로 감자 농사를 지었습니다! 장군님께 감자를 드리려 갖고 왔습니다.” 아낙은 애써 지은 농사 수확물을 지주에게 바치는 게 체질화 돼 있었다. 김일성도 감정이 북 바쳤다. 두 손을 붙잡고 우렁찬 음성으로 “고맙습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낙의 귀에는 김일성의 목소리가 신의 음성처럼 들렸다. 김일성은 아낙네를 자리에 앉혀 놓고 물었다. 

“아주머니! 글을 아세요?” 아낙은 글을 배우질 못해 모른다고 했다. 김일성은 정색을 하고 학생을 타이르듯 말했다. “내년 이 맘 때도 농사를 잘 지어 오늘처럼 감자를 갖고 오시오! 그런데 내년에는 반드시 글을 배워 오시오!” 김일성은 그날 바로 전국에 지령을 내렸다. 모든 인민들에게 글을 가르쳐 글을 모르는 인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공짜로 땅을 나눠 주고 공짜로 글을 가르치니 인민들의 환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노예처럼 땅만 파던 인민들이 제 땅을 갖고 농사를 짓고 글까지 깨우치니, 김일성을 바라보는 인민들의 눈망울은 태양을 보듯 부셨다. 하지만 김일성의 사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의 과도한 욕심, 자손만대로 누릴 ‘김씨 왕조’ 욕심에 북한 인민들은 굶어 죽어야 했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