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가난한 변호사의 ‘잘 하신 결정’
[노년의 고동소리] 가난한 변호사의 ‘잘 하신 결정’
  • 하동뉴스
  • 승인 2021.07.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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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벌어진 6·25 전란 속에 국민들의 살길이 막막하던 때였다. 어렵게 수복한 서울이 ‘1·4후퇴’라는 비극적 사태를 맞아 시민들은 다시 피난 보따리를 싸야 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법조계에 몸담아 왔지만 욕심이 없어 생활이 늘 구차했던 방순원(方順元) 변호사도 피난 준비를 했다. 트럭을 빌려 피난 살림살이를 싣고 남쪽으로 떠날 참이었다. 트럭을 빌리려면 당장 5만 원이 있어야 했다. 방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를 찾아가 5만 원만 꾸어 달라 했다. 동료 변호사는 현금을 빌려 주기는 조금 그렇다며 소송사건 하나를 맡겨 주는 것이었다. 사건은 한 시민의 ‘부역(附逆) 혐의’였다. 어느 순진한 평민이 뭣 모르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살려 줬는데 그게 인민군을 건져 준 꼴이 되었다. 그리하여 ‘전시 특별 조치령 위반’으로 걸려 그 평민은 구속 중이었다. 사건을 맡게 된 방 변호사는 구속 중인 피의자 측으로부터 착수금 조로 현금 5만 원을 받았다. 당장 급한 불은 끄게 된 방 변호사는 피난 떠날 비용은 마련한 셈이었다. 

 방 변호사는 한 마음으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고자 담당 검사를 찾아 갔다. 그런데 검사는 예상외로 쿨한 성격이었다. 검사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며 시원스럽게 말해 주었다. 사건 됨됨이를 배배 꼬지 않고 단칼에 풀어 줄 듯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그 사건은 별것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피의자는 오늘 밤 석방 시킬 것입니다.” 검사는 방 변호사를 안심 시키려고 몹시 마음을 쓰는 듯했다. 방 변호사는 피의자 가족들에게 자신의 ‘변호사 역할’을 부풀려 생색을 내고 성과금을 두둑하게 받아 챙길 수도 있었지만, 양심적으로 ‘특별히 신경 쓴 바가 없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미리 받았던 5만 원 착수금이 마음에 걸렸다. 피의자를 위해 애쓴 노력 없이 돈을 거저 받아 서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받은 착수금 5만 원을 피의자 가족에게 되돌려 주고 말았다. 변호사에게 성과 사례금을 듬뿍 주려고 현금을 준비했던 피의자 가족은, 전혀 뜻밖이라는 듯 방 변호사가 내 민 5만 원 돈 봉투를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다. 방 변호사는 홀가분하게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리 아쉽지만 단돈 5만 원에 양심을 팔수는 없었다!” 남편 방 변호사의 자초지종 경위를 들은 부인 역시 뜻을 같이해 이렇게 대꾸하였다. 그 남편에 그 아내였다. “‘잘하신 결정’이었습니다!” 방 변호사는 충청북도 천안 사람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판사생활을 시작, 서울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였다. 퇴임이후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서울대 법대 교수에 발탁되었고, 1961년 대법원 판사에 임명 되어 박정희 대통령 시대 12년간 대법관으로 일했다. 그는 김병로(金炳魯) 전 대법원장, 조무제(趙武濟) 전 대법관과 함께 한국의 3대 청빈 법관에 뽑혔다. 한국 법률문화상을 받았고, 청조근정 훈장에 서훈되었는가 하면 1990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회가 주는 ‘자랑스런 서울 법대인 상’을 받는 자리에서 자신을 ‘바닷가의 이름 없는 조개껍질’에 비유하며 “이런 상을 주는 줄을 미리 알았더라면 거절했을 것”이라 했다. 유신 헌법시절 독재 정권에 맞섰다가 법복을 벗게된 방순원 대법관의 딱한 처지를 알고 있던 민복기(閔復基) 대법원장은 그를 조용히 불러 걱정스러운 듯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다른 분들 같으면 변호사를 해 그런 대로 먹고 살 수 있겠지만 방 판사님은 변호사를 해도 수입이 없을 터인데…!” 이런 말로 위로해 주던 민복기 대법원장은, 전례 없는 사법연수원 전임강사 자리를 만들어 방순원 전 대법관이 밥은 굶지 않게 해 주었다. 방 변호사는 변호사 시절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수임료를 형편에 따라 몇 만 원도 달게 받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뿐만 아니라 사건 의뢰인이 소송을 맡기면 먼저 화해부터 시키려 애를 쓰니, 사람들로부터 ‘소송 만류인’ 또는 ‘조금  철없는 변호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남이 보이지 않은데서 진실하고 역경에서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요 대업을 이룩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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