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개인기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개인기
  • 하동뉴스
  • 승인 2021.08.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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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

                               김준철

가끔
내가 날 흉내낸다
사실
날 따라하기란 쉽지 않다
별다른 특징도 없다
밋밋한 위인이다
목소리, 버릇, 습관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고
나는 오늘도 나였다
내가 온전히 나이기 쉽지 않은 무대에서
차라리 그렇게
흉내라도 내야 나일 수 있게 된다

-시집 『슬픔의 모서리는 뭉뚝하다』(천년의시작, 2021)

【시인 소개】
김준철 / 1969년 서울 출생. 추계예술대학 문창과 졸업. 《시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 『슬픔의 모서리는 뭉뚝하다』 등이 있음.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월간 문화예술전문지 《쿨투라》 미주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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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내가 누굴까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일까요? 혹시 진짜 나는 따로 있고, 지금의 나는 진짜 나를 흉내 내는 ‘짝퉁’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진짜 나였으면 싶은 나를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무리 살펴봐도 나는 “별다른 특징”도 없는 “밋밋한 위인”입니다.
지금의 내가 가짜라면, 그래서 “가끔”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게 지금의 내 모습이라면, 이왕에 흉내 내는 김에 좀 멋있는 사람을 흉내 내면 좋을 텐데 왜 꼭 나 같은 인간을 흉내 내고 있을까요? “목소리, 버릇, 습관”을 최대한 바꾸고 “모두를 감쪽같이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오늘도 나”라니요. 나는 도무지 나일 수밖에 없다니요.
하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봐주지 않는 삶의 무대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봐준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지금의 내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도 나밖에 없지요. 하지만 설령 내가 진짜가 아니면 어때요? 이번 생이 진짜가 아니면 어때요? 가짜라도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가짜면, 그건 곧 진짜잖아요!

(김남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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