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동 문화·관광스토리텔링
[연재] 하동 문화·관광스토리텔링
  • 하동뉴스
  • 승인 2021.10.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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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악양

최참판댁과 그 옆 고소성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섬진강과 ‘무딤이들’은 치마폭을 화락 펼치며 숨겨두었던 별세계를 보여준다. 순식간에 온 몸으로 경치가 들어와 온 마음을 뒤흔들어버린다.
백제를 치러 왔던 당나라 장수가 악양을 지나다가 먼저 뛰어난 자연 풍광에 마음을 뺏기고, 둘러보다가 다시 이곳이 아름다운 중국 호남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여 마음을 뺏겼다고 하던가. 악양, 동정호, 금당 등 중국의 지명이 이곳에 붙여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연히 이곳에 들린 사람일지라도 이곳 산과 강, 들이 빚어내는 경치에 기절을 할 정도로 풍경에 압도된다고 하니, 악양은 하동이 거들고 섬진강이 빚고 백두대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다. 고소성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마치 로렐라이 언덕의 아름다운 정령처럼 한순간에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 아주 특이하게도 한 골짜기가 한 개 면이다. 마을 마을이 골짜기 좌우를 마주보며 자리잡고 있는데, 형제봉과 시루봉 등 높은 봉우리를 이고 골짝골짝 지붕을 이고 들어앉아 버렸다. 어느 곳인들 무작정 걸음해도 평화롭기만 하다. 한국의 풍경과 경치 중에 이토록 가슴 트이고 조화로운 곳이 과연 있기나 했는가. 풍경은 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마침표다. 지리산에서 시작된 악양천은 악양 들을 휘둘러 흘러, 부채꼴 모양의 너른 들판을 만들었다. 섬진강 물길을 배경으로 팔십만 평의 악양 들은 거칠 것 없이 툭 트여버렸다. 봄여름가을겨울 제각각의 자기 멋에 취해 잔뜩 정취를 보여준다. 이곳이 그 유명한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무딤이들’이기도 하다. 

성제봉 아래, 무딤이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 마을이다. 원래 지명인 상평마을보다 평사리마을로 더 유명하다. 가끔 인근 진주시의 상평동으로 더러 오해하는데 이곳의 본 지명이 상평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최참판댁이 자리잡고 있다. 용이 마누라 강청댁의 가슴 아픈 욕지거리로, 또 주인공 서희와 길상의 러브라인에 빠져 ‘토지 삼매경’에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설의 무대인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안 읽어도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때론 읽은 척 ‘아는 체’하기도 한다. 소설 ‘토지’는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의 우리 민족의 애환과 생활모습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의 연대기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평사리마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끈끈한 생명력과 역사를 드러낸다. 금방이라도 주인공 서희의 앙칼지나 한 서린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넘어올 것 같은 최참판댁은 별당, 사랑채, 안채, 초당 등 한옥 13동으로 이뤄져 있다. 솟을대문 아래 서면 무딤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들길을 따라 두 아들 환국이, 윤국이를 앞장 세워 서희와 길상이가 손을 잡고 걸어오는 듯하다.

최참판댁의 소작농이 대부분이었던 평사리는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 그대로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20여 채가 훨씬 넘는 초가마다 문패가 달려있다. 임이네, 칠성네, 소설 속 등장인물로 만났던 이름들이다. 초가집을 이어가는 낮은 돌담길에서 강청댁이 불쑥 나타날 것 같고, 용이의 애인 월선이와 임이네가 맞부딪혀 서로 놀라던 골목의 긴장감도 생생하다. 우물가 빨래터에서는 ‘젖살이 유난히 하얀’ 임이네가 방망이를 두드리며 매초롬한 뒤태를 보이며 앉아 있을 것 같다. 한국문학의 획을 그은 위대한 소설 ‘토지’의 무대, 악양. 이제 악양은 섬진강 지리산이 준 남도 들녘 풍경의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현실이 문학이 되고 문학이 현실이 되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토지! 살아생전 끝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살아생전 그 문화의 향기를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일이다. 

◆‘문화체험 1번지’, 소설 ‘토지’의 무대를 찾아 

악양과 소설 ‘토지’ 속으로의 여행은 먼저 소설 ‘토지’의 배경과 문학사적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주요 동선은 평사리마을과 소설 ‘토지’ 속 인물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악양면 무딤이들을 둘러싼 미점리, 축지리, 정서리를 둘러보는 것은 소설 ‘토지’의 무대 악양을 더욱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느끼고 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악양루→문암송→정서리 조부잣집/취간림→평사리/최참판댁→무딤이들→동정호→한산사→형제봉→고소성 

◆스토리 발굴 

2000년 이후 관광은 그 유형이 심하게 말해 ‘싸그리’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소에 머무는 단순한 주유형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인 체험과 교육 등 다양한 유형의 체험형 관광으로 바뀌었다. 최근 언론 발표에 따르면 감성형 관광이나 체험형 관광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추세다.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체험형에는 문화, 생활, 생태 등의 체험이 있다. 이와 동시에 악양 평사리는 소설 ‘토지’의 주요무대로서, 관광객들에게 문화 생활체험의 최적의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문학의 기둥인 ‘토지’의 무대, 그 현장을 둘러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문화적 갈망 중의 하나이다. 하물며 그곳이 문학 속 허구의 공간을 현실의 공간으로 재현해 놓은 곳이라면야 더욱 그럴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 존재하지 않은 것은 신비적 이미지와 함께 ‘잡고 싶고 보고 싶은 함께 하고 싶은’ 끊임없는 욕망을 생산해낸다. 소설의 무대는 이제 ‘새로운 관광브랜드’로 떠올랐다. 

◆<택리지>에 ‘악양은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동읍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달려가다 보면 섬진강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너른 들판을 만난다. 국도 19호선을 사이에 두고 오른 쪽은 넓은 모래톱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악양 골짜기로부터 내려와 치맛자락처럼 펼쳐지는 악양 무딤이들이다. 토지의 주요무대인 악양면은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에 있는 면이다. 인구 5000여 명, 면적 52.69㎢이다. 동쪽으로 청암면, 북쪽으로 산청군과 화개면, 남쪽으로 하동읍에 접하고, 서쪽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에 접한다. 14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형제봉(1115m)·신선봉(600m)·시루봉·칠성봉(899m)·구재봉(768m) 등의 높은 산지가 3면을 둘러싸고 있으며, 섬진강의 지류인 악양천이 면의 중앙을 흐르고 주위에 넓은 평지가 전개돼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악양을 “산 남쪽에 화개동, 악양동이 있는데 모두 사람이 살고 산수가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대단히 아름답다?’ 역시 그의 말이 맞았다. 

 섬진강 강바람은 숨을 들이키면 가슴 속 깊이까지 한꺼번에 훑어내릴 것 같은 그런 강바람이 있다. 또 지리산은 어떠한가. 결코 속내를 다 내어주지 않을 듯한 기상이지만 모든 것 다 주고, 마지막까지 품어 다독거리는 산이질 않은가. 섬진강과 지리산이 힘을 북돋아 만든 하나의 작품이 있다면, 이곳 하동군 악양일 듯하다. 이곳 악양에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와 최참판댁이 건립되어 2001년부터 매년 토지문학제가 열린다. 악양들판축제, 대봉감축제가 열리고 있고, 문화재로는 하동 고소성(사적 제151호)이 있다. 면소재지가 있는 정서리 북서쪽의 형제에서 신선대로 향하는 능선은 섬진강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등산 코스라고. 5월이면 철쭉으로 뒤덮인 붉은 산을 보러 전국의 등산객이 몰려든다. 

-1년 내내 악양을 돌며 동냥해도, 들리지 않은 집이 3곳…. 부자동네
악양은 산과 강과 들을 다 갖춘 풍요의 땅이었으니.... “일 년 밥동냥을 해도 (안 얻어먹은 집)세 집이 남더라”라는 동냥아치가 남긴 말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악양의 이야기다. 음력 4~5월은 일 년중 가장 배고픈 시절이라, 춘궁기 또는 보릿고개라 해서 나라님도 넘기 어렵다 했다. 배고픔에 장사 없다고 여물지 않은 풋보리 죽이라도 끓일 때면 그나마 잘 견뎌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궁해도 악양에서는 굶는 사람이 없었고 이곳에 오는 동냥아치들도 헛걸음하는 적이 없었다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동냥아치들이 음력 초하룻날 악양 어귀 미점리 개치마을에서 동냥을 시작해, 섣달 그믐날 악양 서쪽 외둔마을에서 저녁을 먹으면 일 년이 지난 거라고. 마을 입구인 동쪽에서 동냥을 시작해 북쪽으로 가면서 동냥을 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오면서 동냥을 하는 기간이 1년이 걸리는데, 그러고도 얻어먹지 않은 집이 세 집이나 있더란 말이다. 악양 사람들의 살림이 얼마나 넉넉했던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그 시절 악양이 얼마나 큰 마을이었고 너른 들에 인심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짐작케하는 이야기이다. 이 고장에 내려오는 짧은 민요 속에도 악양의 넉넉한 살림이 잘 드러나 있다. “미점 축지 큰애기들은 풀대죽 쑤기가 제작이고/평사대촌 큰애기는 물밤따기 제작이다/어랑 어랑 어허야 어하난다 두어라/네가 내 사랑이로다“

-포구로 돌아오는 돛배, 동정호 달빛에 남은 옛 전설인가….

악양루는 악양의 8대 경치인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낳은 곳이다. 동정추월은 ‘동정호에 가을 달이 뜬 모양’이란 뜻이다. 이곳에 서면 악양루 그늘이 동정호에 어리고 동정호를 비추는 가을 달빛은 더욱 맑고 환해 그 아름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악양루에서는 동정호를 볼 수 없고 그 아름다움은 그저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악양루는 하동에서 9㎞를 달리면 도로변 우측에 있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정자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르면 섬진강과 악양들, 동정호수 등 절경이 눈앞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지만 오가는 차량과 새로이 들어선 건물들 사이에서 악양루는 차마 초라하다. 앞도 옆도 뒤도 모두 막혀버렸다. 섬진강을 바라보는 대단한 위치였건만 문화재는 도로변 마을 입구에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악양루의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미점리 뒷산인 아미산 아래에 있었는데 중건되고 옮기고 등 몇 번인가를 거쳐 1969년 현 위치에 건립된 것이라 한다. 악양루가 있는 미점리는 신라 때는 섬진강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변방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한 요새인 관방(關防)이 있던 곳이고, 조선후기 식량을 관리하는 사창(司倉)이 있었다. 그리고 악양 팔경 중에 원포귀범(遠浦歸帆:멀리 포구를 돌아들어오는 돛배)이라, 배를 기다리던 마음이 모래알마냥 쌓인 곳이었고, 절경인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섬진강 주변의 지형이 바뀌고 이곳 또한 기운이 쇠락해 옛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 옛날 누군가가 이곳 악양루에서 바라보던 섬진강 노을과 멀리 포구로 들어오는 돛배의 모습은 이제 옛 이야기 속의 한 폭 그림처럼 펼쳐질 뿐이다. 글/하동군·한국국제대학교 정리/하동뉴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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