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연재]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 하동뉴스
  • 승인 2021.11.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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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제1장 낳아주되 갖지 않는다
제2장 성인께는 정해 둔 마음이 없다
제3장 경솔함은 곧장 뿌리를 잃는다
제4장 제 태어난 바를 씷어하지 말라
제5장 배우기를 끊으면 걱정이 없다

산중 촌부들이 누린 함덕의 삶
含德之厚 함덕지후라

含德之厚 함덕지후
比於赤子 비어적자
毒蟲不? 독충불석
猛獸不據 맹수불거
攫鳥不博 확조불박

성덕을 품음이 두터움은 핏덩이와 견줘진다. 독 있는 벌레도 갓난애를 쏘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갓난애를 당겨 잡지 않으며 낚아채는 새도 갓난애를 붙잡지 않는다. <노자 55장 참조>

산중 작은 마을에서 같은 날 태어나 꾀동이 순둥이 불러대면서 평생 외지에 나가본 적 없이 중늙은이가 된 농부가 콩밭에서 김을 매다 잠깐 나무그늘 아래에 자리 잡고 땀을 식히는데 저만치서 풀덤불 속 둥지에다 까투리가 낳아둔 꿩알을 욕심껏 훔쳐 먹고 기어 나오는 큼직한 살무사 한 마리를 꾀동이가 보았다. 제 배 속에 든 꿩알을 깨드리려고 어렵사리 상수리나무 등걸을 기어 올라가려는데 꾀동이가 잽싸게 지게작대기 코로 그 살무사의 뒷목을 질끈 눌렀다. 독을 한껏 품은 살무사가 주둥이를 쫙쫙 벌리고 독이빨을 드러내 독을 쏘아대자 그 주둥이에 삼베수건을 들이밀었고 살무사가 콱 물어버리는 순간 삼베수건을 홱 낚아채니 살무사의 독이빨이 삼베수건에 걸려들어 뽑히고 말았다. 그러고는 짓눌렀던 지게작대기를 떼니 살무사는 그만 나무 아래로 풀썩 떨어져 풀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삼베수건을 들어 보이며 “한 사람 목숨 건졌어” 꾀동이의 큰소리에 가만히 앉아 그 광경을 구경하던 순둥이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꾀동이는 천하제일의 독사 땅꾼이지. 아마 자네 손에 죽은 살무사가 수백 마리 넘지. 어서 삼베수건이나 주게. 젖은 뱀독부터 개울물에 씻어올게.” 산에서 독사를 잡아 죽이는 날이면 구경하던 친구가 늘 독 묻은 삼베수건을 빨아주었다. 살무사를 맨 처음 잡았던 날 “독사도 제 몸 건드리지 않으면 보이는 족족 달려가 작대기로 짓눌러 죽일 것은 없지 않은가?” 순둥이가 시비 건 적이 있었다. “그래 나 독사 백정이야. 독사인 줄 알면 누가 밟겠나. 산길 가다가 모른 채 건드려도 독사는 사정없이 물어 사람을 죽이니 보는 족족 잡아 죽이는 것 아닌가,” “그러네, 독사 한 마리 없애면 한 사람 목숨 구한다는 말이 맞네. 자네가 살무사 사냥을 하고 내가 자네 삼베수건을 빪세.” 골목에서 놀던 깨복쟁이 코흘리개 시절을 지나 서당에 함께 다니면서 훈장님으로부터 꾀동이 순둥이 별명을 얻었고 소년시절부터는 봄여름엔 다랑이 논밭에서 함께 농사를 짓고 가을겨울에는 산에 올라 약초를 캐면서 살았다. 꾀동이는 순둥이를 부러워하고 순둥이는 꾀동이를 부러워했다. 꾀동이는 서당에서 글을 잘했고 순둥이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런데 훈장님은 꾀동이는 머리가 앞서 재빠른 반면 순둥이는 머리가 뒤져 둔한 편이나 세상살이에 둔한 편이 오히려 좋을 때가 더 많으니 꾀동이와 순둥이는 늘 좋은 벗으로 함덕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그 가르침을 받은 대로 둘은 한평생 산중에서 도란도란 상대의 의견을 서로 따라주면서 봄 여름 가을이면 농사짓고 겨울이면 함께 심산에서 약초 캐면서 서로 마음을 툭 열어두고 욕심없이 서로 도와 밀어주고 끌어주고 끌어주며 유별날 것 없이 늘 흘러가듯 평상심으로 살았다. 이들에게 부귀나 명성이란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냥 그대로 산천 따라 삶을 누렸다. 이들 산중 촌것들이야말로 함덕의 삶을 그냥 그대로 누렸던 셈이다. 마음속에 탐욕이 일지 않으면 그 마음이 함덕이고, 목숨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함덕이다. 임신부가 부록한 배를 드러내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보기 좋다. 왜 그럴까? 그 불록한 배가 함덕의 모습을 떠올려주는 까닭이다. 남정네가 산더미 같은 배통은 탐욕을 떠올리되 함덕을 져버린 모습 같기 때문이다. 번잡하고 숨차게 하는 도시를 벗어나 산천에 가면 마음이 절로 고요해지는 것은 산천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함덕하고 있는 까닭이다. 자연을 따라 본받기 하면 그것이 곧 덕을 품고 삶이니 무엇보다 과욕 즉 욕심을 줄여 가면 함덕이 누구에게나 자리 잡아 간다.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말이 자연이다
希言自然 희언자연이라

希言自然 희언자연
飄風不終朝 표풍부종조
驟雨不終日 취우부종일
孰爲此者 숙위차자
天地 천지
天地尙不能久 천지상불능구
而況於人乎 이황어인호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말이 자연이다. 돌개바람은 반나절도 못 가고 소나기는 하루 낮을 못 간다. 무엇이 이를 하는 것인가? 천지이다. 천지도 오히려 장구할 수 없거늘 그런데 하물며 인간에게 랴! <노자 23장 참조>  

사람이 제 입으로 맨 처음 소리 내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맘’일 터이다. 나는 다섯 살부터 두 여동생을 데리고 마당에서 놀았다. 마당 가 담밑에 매어둔 어미 염소의 젖을 빨고자 그 새끼들이 ‘맴맴’ 소리하자 돌잡이 여동생이 ‘맘맘’ 하며 무척 반가워했지만 세 살짜리 여동생은 ‘맴맴’ 소리에 관심 없이 소꿉장난만 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텃밭으로 달려가 “엄마야, 동생이 젖 달라고 맘맘 한다”고 외쳤던 기억도 생생하다. ‘맘’이 ‘맘맘’이 되고 ‘맘맘’이 ‘엄마’가, ‘엄마’가 ‘어머니’ 소리로 되면 희언은 사람의 입에서 사라지고 언어만 들고 나게 된다. 자연의 말을 희언이라 하고 사람의 말을 언어라 한다. 희언은 그냥 그대로 그 소리만으로 들어주면 되는 말이지만 언어는 여러 속셈을 숨기고 감출 수 있어 그냥 그대로 들어선 낭패이고 알아서 갈아들어야 하는 말이다. 아이가 ‘맘맘’ 하다가 ‘엄마’ 하면 그 아이 입에서 이미 희언은 떠나고 언어가 끼어들어 버린 셈이다. 잔뜩 재 저질러놓고 엄마가 왜 이랬느냐고 따지면 시치미 뚝 떼고 안 했노라 고개 젓는 돌잡이 입에서 어찌 희언이 나올 것인가! 해놓고 안 했다고 뚝 잡아떼는 그 마음속은 이미 자연의 마음을 물리쳤고 인간의 마음이 들어오는 법이다.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에서 벼슬할 때 우리 말을 ‘때까치 소리’ 같다고 했다 해서 우리말을 깎아내렸다고 말하는 의견을 낸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뜻글로 주고받는 중국말에 비하여 우리말은 소리 그냥 그대로 주고받는 말인지라 ‘때까치 소리’라는 비유를 들었을 터라는 짐작이 앞선다. 까치 새끼는 제 어미의 소리를 맨 처음 알아듣고 참새 새끼도 제 어미의 소리를 맨 처음 알아듣듯이 사람도 다를 바 없이 어머니 소리를 맨 먼저 듣고 흉내함이 돌잡이만이 누리는 인간의 희언이다. 젖 먹는 어린애한테 ‘젖 먹자’말하기보다 ‘맘맘’ 소리 하는 쪽이 산모의 희언이다. 뜻으로 들리지 않는 소리라야 어린 것이 쉽사리 들어줌이 어린애의 자연이다. 뜻으로 들림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소리로 들림이 자연의 말 희언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온갖 것들이 내는 소리들, 물소리 새소리 짐승들 소리 등등 이런저런 소리들이 바로 자연의 희언이다. 
자연에는 온갖 소리들이 있다. 그러나 무슨 뜻을 고집하려고 나는 소리란 없다. 산들바람에는 조용하다가 돌개바람이 불면 산천의 온갖 구멍들이 저마다 소리를 세차게 낸다. 반나절 넘게 불어대는 돌개바람은 없다. 돌개바람이 사라지면 요란스레 우짖던 소리들도 따라서 사라진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면 초목도 땅바닥도 그냥 그대로 비를 맞아준다. 그러나 소나기가 쏟아지면 나무 잎사귀들도 요란스럽게 소리 내고 땅바닥 돌멩이 할 것 없이 귀청을 때리다가도 언뜻 소나기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진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물이 흐르거나 그 무엇들이 부딪친다거나 하면 이런저런 소리 내다가 바람이 자고 비가 개이고 물이 머물고 부딪침이 그치면 따라서 났던 소리들도 속절없이 사라진다. 이처럼 자연의 말인 희언에는 어떠한 꼬리표도 달리지 않는다. 그래서 희언은 참말이나 거짓말이냐 따지고 물어 시비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나무 그림자가 뜰을 쓸어도 뜰 위에 티끌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듯이 자연의 말 희언은 오고 가고 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언어를 참말이냐 거짓말이냐 따지면서 말뚝이처럼 박아놓고 변함없이 붙들어 매고자 글로 적어 도장을 찍자고 한다. 글/윤재근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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